2학년들의 두 번째 제작실습 공연이 올라갑니다.
무대 위에서 걷고 말하고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관객 앞에서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한 학기 동안 열 아홉 명이 힘을 모아 준비한 공연입니다. 그러니 공연의 결과보다는 준비한 과정에 마음이 더 쓰입니다. 우리는 충실한 과정을 보냈을까요?
한때, 극단 창단 공연으로 피해야 하는 두 작가로 셰익스피어와 체홉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전자는 작품세계의 광대함으로 그리고 후자는 표면의 잔잔함과 심연의 소용돌이로 공연에 성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 작가에 대한 연구도 많이 되었고 또 공연 경험도 많이 쌓여서 연극학과 1, 2학년들도 과감하게 선택하는 레퍼토리가 된 것도 현실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체홉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요?
러시아 사실주의 작품의 대표격인 체홉의 작품 <세 자매>는 어렸을 때 행복했던 ‘모스크바’에 가기를 꿈꾸는 세 자매의 희망과 좌절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기에는 체홉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비슷한 등장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체홉은 그의 반복되는 주제, 즉 현실의 변화와 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도전과 응전’이라는 영원한 화두를 반복해서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혁명적 변화를 겪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적 인간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아날로그적 인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적은 수의 참여인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여타의 제작실습처럼 과정을 감내한 학생들에게, 그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또 잘 지도해 주신 김이경 교수님과 학생들의 자문에 성실하게 답해주신 여러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공연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한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의 것입니다. 공연과 함께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학과의 주역으로 성장해 갑시다.
고맙습니다.
“모스크바~ 모스크바로 갈 수만 있다면~”
세 자매는 현실의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일상은 힘이 들기만 합니다. 모스크바에 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 자매는 모스크바에 가지 못합니다. 젖은 수건처럼 삶과 일상을 버텨 나갈 뿐입니다. 가족의 기대를 받은 젊은 청년은 자신이 올라갈 수 없는 기대를 포기하고 삶에 안주합니다. 아무에게도 그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노인에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말을 그저 내 뱉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적응하지 못한 노인은 늘 술에 취해 있습니다. 전문적 지식이 있지만 늙은이는 삶 대신 술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말은 크고 호탕하나 울림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사랑을 꿈꾸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봐주지 않고 다른 사람만 봅니다. 또 한 여성은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진 가정에서 도피하고자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그 행동은 현실에서의 도피일 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꿈꾼 여인은 일상 속에 스며들기만 할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체홉의 [세 자매]는 이렇게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을 사는, 현실을 보여주는 군상들이 모여 있는 희곡입니다.
체홉의 [세 자매] 작품 속 인물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노력하지만 누구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현실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미 포기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를 합니다. 젊은이들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만 결국 무거운 현실을 버텨나갈 뿐입니다.
체홉이 다가옵니다. 체홉의 작품이 고전인 이유는 시간의 변화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삶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세 자매] 속 인물이 처한 상황의 핵심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묵직한 삶의 무게를 담은 작품이 학교생활에 적응했지만 아직은 어설픈 2학년 학생들에게 걸어옵니다. 올가의 “살아야지, 살아가야지….”라는 마지막 말이 슬픈 이유는 젊음의 열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무겁고 아프기 때문일 것입니다.
체홉은 그런데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습니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 직면한 현실이 비극적이지만, 멀리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면 별일 아닌, 미소를 짓게 하는, 웃음이 나오는 해프닝 일 수 있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체홉의 기대처럼 웃음이 가득한 공연이 되길, 여유를 가지고 멀리서 바라봐 미소를 짓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텍스트 작업부터 전체를 이끌어 가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 연출부에게, 스텝 작업과 연기를 동시에 한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열네 번의 무대 스케치 업을 구성한 무대 칩 성식이의 성실함에 감동합니다. [세 자매] 작품을 통해 여러분이 연극과 삶을 많이 배웠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